나 스스로에게 한없이 냉정한 것이 과연 정답일까
나는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릴 때부터 그런 습관을 들였다.
나에게 벌어진 부정적인 일에 대해 생각할 때
일말의 감정도 섞지 않고 객관적,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
그래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나의 일에 감정을 섞기 시작하면
나를 동정하기 시작하면
나조차도 나를 불쌍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나를 우울로 색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무너지지 않았고,
지금 이렇게 밝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게 과연 정답이 맞을까
'무너지지 않는다'가 정답이 맞나?
밝게 사는 게 정답이라고 누가 그래?
정답은 누가 만드는 거지?
밝든, 우울하든 본인이 원하는 상태로 살아가는 게 정답이겠지
나는 우울을 원하지 않았고, 밝음을 원했으니
나에게는
내가 택했던 저 방법이 정답이 맞다. 내 인생에 있어서는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가 어떤 상태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나는 모르니까.
그러니 쉽사리 내 기준으로 생각해서 조언을 하면 안 되는 거지.
앞으로 조언을 하기보다는 그냥 내 이야기를 해주자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서 이렇게 했어 너는 어떻게 살고 싶어?
그런데 우울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을 바라지 않나
사람들은 왜 행복을 바랄까
가지지 않아서 인가
행복을 온전히 소유하고 다룰 수 있게 된 지금의 나는
더이상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에 행복이 포함된 다채로운 감정을 바란다.
나는 왜 다채로운 감정을 바라지?
가지지 않아서 인가?
내가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인가
맞는 것 같기도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밝음만을 원하지 않으니
스스로에게 한없이 냉정할 필요가 없다.
좀 더 다채로운 감정을 원하니
나는 나를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지?
그저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부정적인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감하면 되는 건가?
나 스스로에게 감정을 섞기 시작하면 무너지던 거 아니었나?
그치 무너지겠지. 그렇지만 이제는 다시 일어날 자신이 있다.
그래 그 차이야.
예전에는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몰랐으니까
아예 무너지지 않는 법을 택했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날 자신이 있으니까
무너져도 되는 거다.
그냥 모든 상처를 있는 그대로 아파할 수 있는 거다.
밝음 속에 나를 가두는 것이 아닌
더 다채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 스스로에게
좀 더 맘 편히 다정해져도 될 것 같다.
그래 계속 의아했어.
난 강한 사람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 찾아와도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너지겠지. 하지만 다시 일어날 자신이 있다.
난 약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 스스로를 놓아버리지 않을 강한 책임감과 지혜가 있다.
나는 한없이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인데
따뜻하고 여린 사람을 동경하는 데서 오는 모순이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다.
사실 나도 얼마든지 따뜻하고 여릴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