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필사

[한글필사] 2024.05.25.

Sungyeon Kim 2024. 5. 25. 10:40

그녀의 매듭 - 최제훈

 

그래, 이렇게 생각을 해보자.

 

내 안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삶이 공존한다.

 

내가 선택한 삶과 선택하지 않은 삶.

 

선택한 삶 속에서 나는 사람들에 떠밀려 지하철을 타고, 퇴근길에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이따금 서점에 서서 인테리어 잡지를 뒤적인다.

 

어느 날 우연히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타거나, 아메리카노 대신 에스프레소를 마시거나, 인테리어 잡지 대신 배낭여행 안내서를 뽑아 들거나, 오랜 이성 친구에서 사랑을 느낄 때, 내 삶은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진다.

 

머리가 반으로 갈라진 플라나리아처럼 하나의 몸통에서 뻗어나온 두 개의 촉수가 제각기 새로운 기억을 축적해간다.

 

다시 네 개로, 여덟 개로, 열여선 개로... 무한 분열하는 촉수들이 저마다의 기억을 주장한다.

 

서로 몸을 밀치다가 끊어지기도 하고, 두 개의 촉수가 뒤얽혀 매듭으로 묶이기도 하면서.

 

지금의 내가 선택하지 않았기에 알지 못하는 삶, 알지는 못하지만 그 속엔 변함없이 내가 존재하는...

 

그중 하나는, 어쩌면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