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유럽 여행 9일차 (피렌체)
아니 유럽 물들 정신 똑디 안 차리고 사면 자꾸 스파클링 당첨이다…… 이래서 버린 물이 몇 개인지…….😢
어쨌든 9일 차도 시작! 이 날은 또 역시 비 온 뒤라 햇살이 무척이나 예뻤다.
1. 피티 궁전
이 여행 시작도 전에 피티 궁전 입장권을 미리 구매해 놨어서 9일 차는 시작부터 피티 궁전으로 향했다.
사실 사치스럽고 화려한 금장식 그만 보고 싶어서… 음..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피티 궁전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단순한 호화로운 궁전이 아니었다. 거의 100개 정도 되는 미술품이 몇 십 개의 방마다 전시되어 있었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른 예술적 흐름을 감상할 수 있었다!
원래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리 큰 흥미가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 궁전에 다녀오고 나서 매우 큰 관심이 생겼다… ㅋㅋㅌㅋ ChatGPT한테 피티궁전 투어해달라 하고 대화하면서 예술사를 알아가는데 내 취향이 낭만주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친구 이00 군은 낭만주의라는 이름만 보고 ‘낭만주의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걸?’이라 했지만… 제발 00아..
낭만주의 시대 작품들은 고독한 인간의 내면을 중점적으로 철학하고 탐구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낭만이라 부르는 감성과는 느낌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래부터 좋아하던 예술 소재와는 정확히 일치한다! 그래서 시간 날 때 낭만주의를 한번 제대로 파보고 싶다.
궁전을 전부 구경하고서는 기프트샵에서 예쁜 책갈피도 사고, 이 날따라 예쁘다는 칭찬을 잔뜩 들으며 관람을 마무리했다! 외국인들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칭찬을 한다. 계속 칭찬한다. ㅋㅌㅋㅋㅌ 그냥 모든 말들에 칭찬과 인정이 섞여있는데 뭔가 내가 자연스럽게 하는 모든 행동들에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계속 너 너무 스윗해🥰’ 하며 칭찬을 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2. 유럽판 인생네컷
피티궁전을 나와 유럽판 인생네컷을 찍으러 갔다. 여기 인생네컷은 한국과 다르게 진짜 리얼 필름 사진이고! 되게 구시대적이다 ㅋㅋㅌㅋㅋ 사진이 박수를 치면 찍히고 박수를 치면 인화된다 ㅋㅌㅌㅌㅋ
사진 기계에 2유로를 넣고 박수를 쳐야 됐는데 2유로짜리 동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어서 헤맸다.
그때 MZ 여학생들이 내 1유로 동전 두 개와 본인의 2유로 동전을 바꿔주며 도와줬다..🥺내 사진 나온 거 보고는 ‘잘 나왔어?!?? 뭐야 너무 귀여워🥰’ 하며 또 칭찬해 주던 ㅋㅋㅋ
필름 사진이라 감성도 미쳤고, 한국보다 사진 왜곡이 덜 심한 것 같아서 난 여기 인생네컷이 한국 것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3. 빈티지샵 + 옷가게 구경
피렌체는 쇼핑 거리가 굉장히 활성화 돼있다! 빈티지샵도 엄청 많아서 하나씩 구경하러 다녔는데, 유럽 여행 시작하고 지금까지 지나치게 무리해서 걸어 다닌 탓일까…? 왼쪽 발목이 너무 아파서 점점 절뚝거리며 걷게 됐다. 너무 아파 더 이상 못 걷겠다! 싶어서 식당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4. 로컬 와인바
로컬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조그만 와인바에 들어가서 돼지고기 납작 면 파스타랑 로제 와인을 시켰다! 유럽에서 먹은 식사들 중 가장 저렴한 편이었고 맛도 괜찮았다! 와인이 특히 너무너무너무 맛있었는데 원래 나는 와인을 한 잔 마시면 딱 취하기 전 단계까지 가는 편이라 마지막 모금까지 마시고 이제 좀만 쉬다 나가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미국 이모들이 예쁘다고 플러팅을 하기 시작하시더니 ㅋㅌㅋㅋㅋㅋ 이 와인 너도 먹을래😆??? 하며 술을 내 잔에 따라주셨다 ㅋㅋㅋㅋ 이 빨간 와인의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는데 되게 깊고 달아서 그런지 결국 이거 먹고 취해버렸다..
어쨌든 사진도 찍어드리고 바이바이한 후 식당을 나와 다시 쇼핑 거리를 걷기 시작하는데 취기가 올라온 상태라 그런지 발목이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 이모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또 열심히 돌아다녔다!!
5. 노을 + 다리 + 젤라또
술을 먹으니까 또 달콤한 게 먹고 싶어 져서 젤라또를 하나 사들고 다리로 향했다. 다리 난간 위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분홍빛으로 예쁘게 물든 강과 하늘을 감상하는데 모든 잡념이 사라지는 듯한 평온하고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부다페스트의 강과는 되게 다른 느낌인데 피렌체에서의 모든 시간은 이 강처럼 천천히 또 차분하게 흘러가는 느낌이다. 매 순간이 느린 프레임 영화 같다.
6. 서점이자 영화관인 공간
또 술 깨니까 발목이 아파서… 서점과 영화관이 섞인 예쁜 공간에 들어가 앉았다. 아쉽게도 이 날은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지만, 노란 영화관 의자에 앉아 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힐링이었다!
7. 강아지와 함께 앉아 보는 버스킹 공연
해가 진 후 광장으로 가서 버스킹 공연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한 베이지색 강아지가 내 옆으로 와 내 다리에 착 붙어 앉았다🐶 그리고 솜망치같은 발 한 쪽을 내 다리 위에 살포시 올리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어둠 속 반짝반짝 빛나는 회전 목마 옆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부터 광장을 가득 메우는 기타 소리, 그리고 옆에 귀여운 복슬복슬 강아지까지 완벽한 저녁이었다!
8.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노숙자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한 노숙자 청년이 나에게 와서 버스 티켓을 사줄 수 없냐며 간절하게 물었다. 처음에는 노숙자인지 아니면 지금 당장 돈이 없어서 난처한 상황인지 헷갈렸다. 그래도 티켓 하나 정도는 사줄 수 있으니까 사주려 했는데 두 개가 필요하대서 이상함을 느끼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정류장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계시던 할머니가 ‘도움 필요 하니? 내 옆에 앉을래?‘하며 나를 지켜주셨다. 사실 할머니께 답은 하지 못했다. 내가 도움이 필요한 쪽인 건가? 싶어서.. 하지만 도와주신 할머니를 바보로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할머니 옆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래도 청년의 간절한 눈빛이 계속 신경 쓰였는데 할머니께서 그런 나를 보고 이런 말을 해주셨다.
‘그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는 맞아.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도움은 아니야’
그렇다면 그는 대체 어떠한 종류의 도움이 필요했던 걸까…? 어떠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결국은 모두가 ‘이러한 종류의 도움은 아니야‘ 하면서 외면했기에 길거리에 나앉게 된 거 아닌가?
내 잘못이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결정은 무엇이었을까 계속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