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유럽 여행 10일차 (시에나)
10일 차는 시에나라는 피렌체 근교 소도시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날이었다! 로마 민박 사장님께서 자꾸 거길 왜 지금 가냐고..ㅎㅎ 아무도 지금 안 간다고 뭐라 잔뜩 하셨지만, 말 안 듣고 가본 소감은 안 갔으면 후회할 뻔했고 나 같은 여행자도 정말 많았다.
아마도 로마 민박 사장님께서는 순수 남한분이 아니셔서 한국의 방학 - 학기 시기를 잘 몰랐던 탓에 저런 생각의 오류를 갖게 되신 것 같다.
1. 시에나행 버스 지연 + 버스에서 만난 중국인 언니
피렌체행 기차를 놓쳐본 아픈 기억 때문에 이 날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버스 출발 시간보다 훨씬 일찍 정류장에 가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정 시간이 20분이 지나도 버스가 안 오는 것이다…? 분명 여기가 맞는데…. 또 놓친 거야…? 하면서 직원을 찾았는데 알고 보니 버스가 40분 딜레이 된 것이었다.
정말 크게 안도했다 ㅋㅌㅋㅋㅋ ‘휴…. 나 또 놓친 거 아니구나…..’ 진짜 나 자신에게 화날 뻔했다.
그렇게 늦게 도착한 버스를 무사히 타고 시에나로 향하는데 그 버스에서 한 중국인 언니랑 친해졌다! 그 언니도 혼자 유럽 여행을 다니고 있었고, 지금 이 버스를 타고 마지막 여행지인 로마로 향한다 했다! 나에게 피렌체의 여러 맛집, 액세서리 가게 등을 추천해 줬는데 그중 언니가 극찬한 티본스테이크 맛집은 실제로 11일 차에 방문해서 정말 좋은 기억을 만들고 올 수 있었다.
2. 시에나 도착 후 곳곳 둘러보기
이 날도 햇살이 엄청 눈부셨는데 또 온도 자체는 선선해서 딱 완벽한 날씨였다. 요새, 성당 등 시에나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시에나는 피렌체보다도 더 작고 빈티지한 느낌이라 정말 마음에 들었다. 여기는 대부분의 건물이 붉은 벽돌로 지어져서 온 세상이 핑크빛이었는데 어떤 이유로 자타공인 붉은 도시가 되었을까 ChatGPT에게 물어보니 중세 시대의 유럽에서는 보통 대리석으로 건물이 지어졌지만, 이 지역 근처에서만 붉은 점토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붉은 점토가 대리석보다 더욱 저렴하기에,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붉은 점토로 만든 벽돌을 이용해 지어졌다고 한다.
이 사실을 새롭게 배우고 생각보다 모든 경이로운 것들의 이유나 계기가 단순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단테의 신곡에 언급된 샘
뭔가 신기하게 생긴 샘이 있대서 가봤는데, 알고 보니 진심으로 감명 깊게 읽었던 책 ‘신곡’에서 언급된 샘이었다. 다들 여행에서 은근히할 게 없다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숨은 의미들을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정말 잘 가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을 다녀온다든지 좋아하는 작가가 살았던 곳을 다녀온다든지 숨은 의미들을 찾아다닌다든지
4. 초록색 테라스에서 먹는 인생 토스카나 샌드위치
뭔가 이 날은 신선하고 가벼운 식사를 하고 싶어서 샌드위치 가게로 향했다! 엄청 인기 가게였는데 다행히 테라스 자리가 남아있어서 바로 앉아서 주문까지 할 수 있었다. 직원 분께서 추천해 주신 토스카나 샌드위치랑 복숭아 아이스티를 시켰는데 토스카나 샌드위치는 내가 인생 살며 먹어본 샌드위치 중 가장 맛있었다… 빵이 겉바속촉의 정석이었고 속에 들어간 햄의 짭짤한 맛은 고소한 빵과 조합이 좋았다. 빵을 먹다가 목이 멜 때 들이마시는 달달하며 시원한 아이스티는 진짜 온 세상에 환해지는 느낌..🥺
5. 광장에 냅다 앉아 먹는 젤라또
시에나는 광장도 붉게 예뻤는데 솔직히 피렌체, 로마, 부다페스트 광장보다 더 내 취향이었고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딱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광장인 느낌? 동그랗게 뻥 뚫려있고, 테라스 딸린 식당들이 광장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고, 사람들은 광장 바닥에 앉아서 노닥노닥 이야기를 나누는!
6. 성녀 카테리나의 집
광장에서 좀 앉아 쉬다가 다시 시에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성녀 카테리나의 집도 다녀왔다. 사실 구경할 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성녀 카테리나의 일생을 알아가는 거 자체가 재밌었다. 성녀 카테리나는 인류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곳저곳에서 기념되고 있었다.
기프트샵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아이 둘을 지키는 천사가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예쁜 포토카드를 발견해 바로 얼마인지 여쭤봤다! 그런데 50센트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사서 계속 쳐다보며 들고 다녔는데 그러다 20분 만에 잃어버렸다…😥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었는데 바로 잃어버려서 세상이라도 무너진 기분이었다… 왔던 길 다시 쭉 되돌아가봤지만 결국 못 찾았다..
7. 광장에 앉아 먹는 주황색 멜론 + 딸기 요거트
마트에서 산 주황색 멜론과 딸기 요거트를 광장에 앉아 먹으며 여유를 즐겼다 주황색 멜론은 과육이 굉장히 달달했고 딸기 요거트는 노슈가 제품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맛이 되게 신기했다. (맛없었다..^^)
이거 먹다가 위에 포토 카드 잃어버린 거 알아채고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못 찾아서 포기하고 다시 돌아와 앉았다..
기분 전환할 겸 광장 바닥에 앉아 책을 펴서 보는데 다행히도 바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냥 예쁜 햇살 아래 앉아 살랑살랑 부는 바람도 포근하게 느껴지고, 새롭게 찾은 이 스토너라는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소재라 여유로운 시간을 즐겁게 채워줬다.
이렇게 시에나 당일치기 마무리하고 피렌체로 돌아왔다!
시에나는 그냥 광장 바닥에 앉아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힐링인 평화롭고 고즈넉한 도시여서 참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