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1일 차 9/11(수)
유럽 여행 첫날부터 스펙타클했는데 그걸 전부 일기장에다 손수 적기에는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일단은 티스토리에 타자로 와다다 두서없이 남겨놓은 후 나중에 핵심 이야기만 추려서 일기에 더욱 구체적으로 풀어나갈 생각이다.
시간 순서대로 1일 차를 회상해 보자면
1. 중국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짝짜꿍 의지한 한국인
나는 부다페스트 직항 항공권이 아니라 중국 충칭을 경유해서 가는 항공권으로 20만 원대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매를 했다.
비행기 환승은 처음이라.. 또 중국 공항에서 말도 안 통하고, 환승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방황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같이 방황하고 있는 내 또래 한국인을 만났다 ㅋㅋㅋㅋㅋ 나는 방황하긴 해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무념무상이었는데 그 한국인은 거의 울먹울먹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에게 매우 큰 의지가 될 수 있었다. 나는 esim연결방법을 찾아주고 그쪽은 나에게 잃어버린 길을 찾아주고....
이때 느낀 거
뭔가 난 주변에 관심이 없어서 잘 보지 않는데 이래서 중국 공항에서 또.. 길을 잃을 뻔했다.. 처음 가보는 곳에서는 어느 정도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나랑 비슷한 목적지를 가진 듯한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 이 분께서 주신 막대 사탕을 먹으며 햇살 가득한 공원을 산책했는데 그렇게 달달하고 행복할 수 없었다!
2. 중국 공항 사연녀된 썰..
환승 대기 시간이 무지막지하게 길었는데... 안 그래도 최근 집안 문제 때문에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된 여행... 기나긴 비행시간과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는 충칭 공항에서 노숙하는 시간 덕분에 나에게는 생각의 골이 깊어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졌다. 항상 어느 정도 고민을 하다 보면 끝내 답을 찾는 편이었는데 해당 문제는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보이질 않았고, 앞으로의 날들이 무겁게 느껴지기만 했다. 가장 사랑하고 싶은 가족이 가장 증오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라면... 아무리 사랑하려 해도 사랑해지지 않는다면... 이게 너무 답답하고 무거워서 ㅅㅎ이에게 털어놓아봤는데 이때 ㅅㅎ이가 한 말 덕분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가족을 사랑하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그걸 노력한다는 거 자체가 이상한 거였구나. ㅅㅎ이도 답은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슬프다고, 내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답을 찾았다. 사실 나는 언제나 혼자였는데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남아있는 가족의 바지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제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달라고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 깨닫고 중국 충칭 공항에서 오랜만에 목놓아 울었다.
라고 저때까지는 저렇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공항에서 내가 했던 행동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나는 가족을 앞으로 몇 십 년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인데 싫어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몇 십 년을 얼굴 볼 수 있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또 그 사람 앞에서만 표정이 굳어질까 봐... 또 말투가 건조해질까 봐.. 그게 싫었다. 그렇다고 가면을 쓰기도 싫다. 가면을 쓰기 시작하면, 나를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 보니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지금의 감정을 당사자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 가장 좋아하고 싶은데, 의지하고 싶은데, 가장 싫어하게 된다고, 그래서 괴롭다고 제발 도와달라고,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하는 것. 괴로운 지금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말 자체만 두고 보면 분명 충격을 많이 받을 테지만, 난 앞으로의 우리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평생 무표정한 얼굴로 모시고 싶지는 않기에. 다행히도 이 선택이 큰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졌다. 상대방은 내 감정이 이런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말, 행동, 선택에 있어 정말 변화가 생겼다. 뭐 일시적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잘한 결정이었다 생각한다. 이 일로 새롭게 혹은 다시 한번 깨달은 것들.
1) 나는 진짜 혼자인가? 그냥 내가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던 것 아닌가?
가족만이 내 곁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이미 나는 내가 힘들 때 어깨를 내어주는 친구라기엔 더 깊은 관계들이 있는데 왜 자꾸 기대 보지도 않고 혼자다 혼자다 생각한 거지. 가장 가까운 가족만이 채워줄 수 있는 욕구가 있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기에 나는 인생의 중요한 가치들을 전부 친구들에게 배웠다. 아니면 의지할 수 있는 어른 자체를 바랐던 것일지도. 왜 자꾸 어른을 찾는지는 모르겠는데... 듬직해서인가.. 나이가 뭐라고 자꾸 어른만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가족이 없어져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까먹으면 안 된다. 나에겐 지금 머리를 스쳐가는 수많은 이름의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2) 가족을 내가 책임지고 모셔야겠다고 '내가' 결정했으면 어떤 상황이 펼쳐지든 어떤 결과가 놓이든 어떤 일이 날 힘겹게 하든 감당해내야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내가 내린 결정에 따른 내 책임이니까. 따라서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결국엔 내가 내린 내 결정 때문에 내가 힘든 건데 누굴 탓해. 이러한 생각을 잊지 않으면 화살이 절대 누구에게로도 향하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가족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택지를 고른다면 나는 분명 죄책감에 매일 시달릴 것이다. 그래서 가족을 모시겠다는 결정을 내가 내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내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이다.
3) 솔직함과 진솔함은 만능이다. 항상 통한다.
근데 또 지인들을 보면 대부분 통하지 않는 게 다반사여서 의아하기는 하지만... 나는 성공률 100퍼센트다. 실패한 적이 없다.
솔직하게 말하는 방식의 차이인지 왜 그들과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이유가 궁금하다. 알아내서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마음을 괴롭히는 일에서 하루빨리 해방될 수 있도록. 솔직함 정도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나는 그냥 내가 무너졌으면 내가 무너진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근데 보통 다른 사람들은 그 상태를 또 말로 포장해서 전달하는 것 같기도 하고.
4) 같은 문장을 보고도 느끼는 바가 다른 게 사람이듯이 우리는 서로에 대해 정말 잘 모르고 오해하기 쉽다. 이러한 문제를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깊은 대화와 감정 교류뿐.
그래서 결과적으로 여행의 시작이
인생 홀로 서기를 위한
김성연의 더욱 단단해지기 프로젝트 (ㅅㅎ이랑 같이 정한 플젝 ㅋㅋ)
가 될 뻔하다가
가족과의 끈끈함을 만들어내는.. 이라기보다는
음 서로가 더 노력하는
시작이 될 수 있었다.
3. 부다페스트행 비행기에서 만난 중국인 할아부지할무니
중국 공항에서 목 놓아 운 후 부다페스트로 향하기 위해 탄 환승 비행기에서 중국 노부부를 만났다. 두 분 다 엄청 인자하시고 얼굴에 웃음꽃이 펴계셔서 참 아름다우시다 생각했었는데 감사하게도 나도 엄청 예쁘게 봐주셔서, 장정 11시간이라는 긴 비행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서로 즐겁게 대화하고 챙겨주며 여행 시작부터 예쁜 추억을 하나 쌓았다. 특히 할머니가 계속 중국어로 칭찬 만땅해주셨는데 자존감 풀충전할 수 있었고, 막 직접 만드신 모자 같은 거 잔뜩 보여주셨는데 너무 귀여우셨다. 난 뭔가.. 항상 할아부지할무니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타입인가 보다 ㅋㅋㅎ
4. 부다페스트 도착 후 숙소행 버스에서 찍은 시트콤..
부다페스트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위탁수하물도 내가 받는 곳 도착하자마자 내 눈앞에 똭 나타나줘서 정말 운이 좋았고, 숙소행 공항버스도 바로 찾아서 자리도 잘 잡았다. 버스 타고 숙소로 향했고 이제 내릴 정류장 근처에 다 왔는데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살짝 모르겠어서 어리바리를 깠다. 일단은 캐리어를 들고 문 근처로 가서 좌석에 앉았는데 어리바리를 까다가 캐리어가 버스 저편으로 굴러간 거.. 그때 버스에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 같이 '오오오...!!' 하면서 버스가 웃음으로 가득해졌다 ㅋㅌㅋㅋㅋㅋㅋㅋㅋ 캐리어를 다시 들고 와야 될 것 같긴 한데.. 어차피 캐리어가 구르다 안착한 장소가 문이라... 그냥 내릴 때 들고 내리면 되겠지 하고 냅뒀다.. 그러다 또 폰 떨어트릴 뻔해서 옆에 내 또래 중국인? 일본인? 도 같이 놀라고 ㅋㅌㅋㅋㅋㅋ 그때 그분이 직접 캐리어를 가져다주시면서 예쁜 웃음과 엄청 다정한 목소리로 'Be careful' 이래줬다.. 그래서 하루 종일 저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서 오후에 만난 그리스 애기에게도 써먹었다.
5. 스몰톡 걸고 싶게 생긴 얼굴인가...?
체크인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일렀어서 숙소에 짐을 잠시 맡기고 혼자 유럽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사실 좋긴 했는데 그냥 롯데월드 같았다. 낮 부다페스트 = 조금 큰 롯데월드..? 이게 거의 24시간 비행 후 쉬지도 못하고 제정신 아닌 상태로 돌아다녀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여기 사람들은 내가 되게 신기하게 보이나 보다. 한국인 여자애가 혼자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런가. 계속 보면서 웃어주고 hi~~ 해주고 (까꿍 이런 느낌..) 스몰톡 좋아하는 나로서는 부다페스트 건물 보는 것보다 이러한 사소한 만남들이 더욱 힐링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친절과 웃음이 기본 베이스인 것 같다. 솔직히 어리바리 많이 깠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친절하게 도와주셨다. 3시쯤 호텔 체크인 하러 돌아와서는 대기 장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슬로베키아였나...? 그분이 지나다가 말 걸어서 또 스몰톡하고 다음에는 그리스 3살 애기가 나한테 와서 같이 놀다 친해졌다. 아기 어머니랑도 얘기하다 친해져서 머르기트섬으로 피크닉도 같이 다녀오기로 했다. 피크닉 가기 전에 잠시 쉴 겸 그리스 모녀는 잠시 숙소로 돌아갔는데 그때 또 완전 귀엽게 생긴 일본인 여학생이 나한테 말을 걸어줘서 잠시 대화를 나눴다. 해당 여학생은 영어를 굉장히 잘했는데 내가 비법을 물어보니 그냥 유튜브 계속 보면서 혼자 지속적으로 말하기 연습을 했다고 했다. 나보다 1살 어린데도 똑 부러져 보여서 참 호감이 가는 친구였다.
뭔가 유럽 와서 사람들과 스몰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하루 만에 이렇게나 많은 인연을 쌓을 줄은 몰랐어서 놀랐고 신기했다 ㅋㅌㅌㅋㅋㅋㅋ
6. 그리스 모녀 + 멕시코 삼촌과 머르기트섬 피크닉
같이 공원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대화도 나누고 애기랑또 뛰어놀고 정말 재밌게 놀았다. 애기는 깊은 바다 같은 눈동자에 정말 예쁜 금발을 가지고 있었는데 밝고 당찬 성격과 어우러져서 정말 너무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내 손을 잡고 막 웃는데... 너무너무너무어무어무너무 행복했다. 애기가 혼자 막 뛰어다니다가 넘어져서 팔꿈치가 살짝 까졌는데 막 울다가 내가 마이멜로디 대일밴드를 손에 쥐어주니까 한숨에 뚝 그쳤다 그리고 날 보며 배시시 웃어줬다. 밴드가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앞으로도 많이 가지고 다녀야지 생각했다.
7. 다리 위에서 본 부다페스트의 점등
피크닉 후 난 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져서 헤어지고 다리로 가서 경치를 구경했는데 해가 질 때쯤이었고 마침 점등시간이었나 보다. 점점 해가 뉘엿뉘엿 지며 강을 중심으로 한 화려한 부다페스트 전체에 황금빛 조명이 하나 둘 켜지는데 진짜 숨 막힐 듯 예뻐서 실제로도 입틀막 하고 있었다. 롯데월드 같다고 한 말은 실언이었다. 이거 보러 나 여기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동안 멍하니 부다페스트의 점등을 감상했다. 후에 본 야경 자체도 정말 예뻤지만 다리 위에서 본 부다페스트의 점등은 진짜 썸 타는 사람들 고백 성사율 100 퍼다.
8. 헝가리 전통 음식 굴라시 먹다가 친해진 인도 삼촌
점등을 본 후 그래도 첫날인데 전통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서 원래 가고 싶어 저장했던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만석.. 예약도 다 찼다해서 어쩔 수 없이 급하게 구글맵을 켜서 근처 후기 좋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연히 딱 한 자리가 남아있어서 바로 앉을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여기 현지인들이 정말 많이 찾은 로컬맛집 같았다. 굴라시도 한국의 고추짱찌개 맛이었는데 추위를 달래기에도 좋고 맛있었다. 옆에 혼자 여행 온 인도 삼촌이 먼저 말 걸어줘서 또 얘기하며 친해졌는데 사실 난 이 날 크루즈를 꼭 하고 싶었는데 (이날만 비가 안 와서..) 미리 예약을 못해서.. (집안 사정 때문에 정신없어서..) 포기한 상태였다. 근데 인도 삼촌이 당일 예약도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삼촌이 직접 예약까지 도와주셔서 티켓을 무사히 구매할 수 있었다 ㅠㅠㅠㅠㅠ 진짜 크루즈 못하고 로마로 넘어갈 뻔했는데 삼촌을 만난 게 천운이었다. 같이 부다페스트 야경을 감상하고 크루즈도 같이 즐겼다. 근데 겉옷을 내가 까먹고 그리스애기 유모차에 놓고 와서 진짜 정말 미치게 추웠다.. 그래서 테라스에서 와인 마시면서 야경 좀 감상하다 내부로 들어와서 클래식 라이브 연주를 감상했는데 그때 사람들은 전부 테라스에 있는 상태라 관객은 오직 나뿐이었다. 연주자분들이 나를 보고 웃으면서 몸을 나에게 돌려 진짜 나만을 위한 연주를 해주시는데 정말 너무 감사하고 낭만적이었다. 크루즈 마지막까지 인도 삼촌이 나를 섬세하게 잘 챙겨주셔서 무사히 좋은 추억 남길 수 있었다. 그 삼촌은 부다페스트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클럽으로 향하셨고 ㅋㅋㅎㅋ 나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헤어지는데 아쉽기도 했고, 정말 너무 친절하고 다정하고 좋은 분이시라 후일에 또 여행을 하다 우연히 마주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루 마무리
뭔가 첫째 날은 상대방이 전부 먼저 다가와주셔서 생긴 인연들인데 둘째 날부터는 나도 먼저 다른 사람에게 말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안 해봐서 할 수 있을까..? 싶긴 한데... 한번 노력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