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무 - 장 폴 사르트르
인간은 먼저 세상에 던져지고, 그 이후에 자신이 무엇이 될지 선택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그는 미리 정해진 본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가 하는 행동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는 무한한 가능성과 동시에 무한한 책임을 수반하며, 인간은 이 책임에서 도망칠 수 없다.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남에게 전가하려는 시도는 '자기기만'으로 이어지며, 결국 참된 자유는 오직 그 자유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실현된다.
의식은 본질적으로 비본질적이며, 끊임없이 자신을 초월하여 대상에 대해 의식한다. 이는 '자기-의식'의 특성이며, 이러한 의식은 스스로를 하나의 '대자적 존재'로서 규정하면서, 동시에 '타자'를 통해 그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려는 무한한 갈망 속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항상 불완전하며,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무를 내재하고 있다.
존재와 시간 - 마르틴 하이데거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세계-내-존재'로서, 그 자신을 둘러싼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고 규명하는 과정에 놓여있다. 이러한 탐구 속에서 현존재는 자신의 '죽음에로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유한성과 고립된 본질을 직시한다. 따라서 죽음은 단순한 생명의 끝이 아니라, 현존재가 스스로의 존재를 완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이자, 자신의 존재를 진정으로 실현하는 사건이다.
->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어 죽음을 가까이 한 게 핵심이었다
현존재는 그 본질에 있어 '시간성'의 구조를 지니며, 이러한 시간성은 단순한 연속적 흐름이 아니라, 현존재가 과거의 '사실성', 미래의 '가능성', 그리고 현재의 '실존적 실재성'을 함께 직시하고 동시에 구성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현존재는 '미래-지향적 존재'로서, 자신의 존재를 '죽음에로의 존재'로 인식하는 그 순간에만 비로소 자신의 실존적 가능성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인간이 본질을 규정하는 그 어떤 외부적 기준이나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실존주의에서의 인간은 한편으로는 극도로 고립되고 불안한 존재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누구의 지시나 도움 없이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완성할 수 있다. 이러한 자아는 결코 고정되거나 주어진 것이 아니며, 오직 그가 선택하는 삶의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형성되는 것이다.
신존주의는 인간이 '기투된 존재'로서, 그 존재의 본질을 선험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자유로운 실존'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기투성은 필연적으로 '초월적 타자성'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며, 인간은 자신을 타자의 시선에 의해 '대자적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기 기만'을 통해 자신의 자유와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려 하며, 그 결과 그는 진정한 자유를 박탈당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제한하는 '악신앙'에 빠지게 된다.
구토 - 사르트르
구토라는 감각은 단순한 신체적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실존적 혐오를 상징한다.
사물은 그저 '있음'으로서 존재할 뿐이며, 그 어떠한 목적도, 의미도, 필요성도 결여된 상태로 나를 압도한다.
이 압도적 '실존적 무의미성' 앞에서 나는 절대적인 자유를 깨닫게 되며, 그 자유는 동시에 나를 무한한 고독과 불안으로 몰아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