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필사] 2024.10.31.

2024. 10. 31. 12:07·한글 필사

나쁜 비판의 잉여 쾌락 - 신형철

 

어쩌다 작품 합평을 하게 되면 학생들에게 권장한다.

'한 가지를 비판하고 싶으면 먼저 다섯 가지를 칭찬하라.'

김연수 작가의 책에서 '인간은 긍정적인 신호보다 부정적 신호를 다섯 배 강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다. 물론 기계적 균형을 맞추라는 뜻은 아니다. 동료의 잠재력을 찾아내 보려는 태도의 가치를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인위적으로 상처를 입혀야 누군가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낡은 생각일 수 있다. 성장은 자신을 알게 되는 체험인데, 그가 제 작품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자기도 잘 아는' 단점이 아니라 '자기는 잘 모르는' 장점이다. 예술가로 성장한다는 것은 단점을 하나씩 없애서 흠 없이 무난한 상태로 변하는 일이 아니라 누구와도 다른 또렷한 장점 하나 위에 자신을 세우는 일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합평 대상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만은 아니다. 합평 주체들의 흔한 경향성을 견제해보겠다는 취지가 더 중요하다. 때로 어떤 학생들은 평가란 곧 비판일 뿐이며, 비판은 가혹할수록 솔직하고 용기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비판을 수행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만족감을 느낀다. 물론 비판은 필요하다. 그러나 대상을 위해서지 주체를 위해서가 아니다. 비판은 대상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어야지 주체가 무언가를 가져가버리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잉여 쾌락이라고 할 만한 부산물을 산출해내고 그것은 주체가 향유하는 비판, 그렇기 때문에 대상은 빈곤해지고 주체만 풍요로워지는 비판은 나쁜 비판이다. 강의실 바깥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잉여 쾌락에는 몇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절약의 쾌락. 프로이트의 말대로라면 쾌락은 절약의 결과다. 어떤 대상 (사람 혹은 사건)의 진실을 온전히 파악하려면 섬세해져야 하는데 거기엔 에너지가 투자될 수밖에 없다. 어떤 비판은 그 투자를 절약함으로써 홀가분한 잉여 쾌락을 가져간다. 근래 나는 어느 선배 문인으로부터 "풍문에 듣자 하니 네가 '조빠'라던데 부끄러운 줄 알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으며 그 비판에 전제돼 있는 관심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나 좋은 비판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긴 어려웠다. 나는 검찰의 수사가 비정상적이고 언론의 보도가 병리적이라고 판단한 수많은 시민들 중 하나로 어떤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긴 했으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신도'는 아니다. 나는 잘못 요약되었고 선배는 쾌락을 얻었다.

 

둘째, 소속의 쾌락. 나쁜 비판은 진실의 복잡성을 훼손하는 데서 나아가 세상을 양분한다. 하나의 범주에 '그들'을 쓸어 담으면 여집합으로 '우리'가 생겨난다. 문제는 이런 나쁜 비판들 주변에도 삶이 모인다는 것이다. 그 비판에 동참하는 일이 뿌듯한 소속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비판한다, 고로 소속된다.' 안타깝게도 소속감에 대한 이런 갈망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진영 논리를 비판하며 자유자재한 지식인임을 과시하는 칼럼니스트도 제 글에 달린 '좋아요'의 개수를 확인하며 자신이 혼자가 아님에 전율할 수 있다. 우리의 이 한심한 본성을, 거스르긴 어려워도 부추겨선 곤란하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셋째, 쌤통(샤덴프로이데)의 쾌락. 정파적인 언론들이 반대 진영 인사를 공격하는 기사를 분별없이 쏟아낼 때 '비판'이라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 아니라 변명처럼 보인다. 검찰이 선별적으로 흘리는 피의사실을 보도하고, 확인된 사실 자체가 아니라 '의혹이 제기됐다는 사실'을 중계하고, 가족을 뒤쫓고 주거지를 포위하며 나온 기사들의 행간에는 타인의 불행을 즐기자는 권유가 섞여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공인의 잘못을 나무랄 때도 우리들의 비판은 쉽게 조롱과 혐오로 번져 나간다. '응보적 정의'를 넘어서는 '회복적 정의'를 사유하는 일각의 흐름이 무색하게도 누군가를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까지 절멸시켜야만 종결될 것처럼 보이는 일부 나쁜 비판의 목소리들은 이미 그들 자신의 쾌락을 위한 것이지 대의나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 글도 비판이다. 비판에 대한 비판. 그러므로 위에서 늘어놓은 말들은 고스란히 내게 되돌아온다. 이 글은 대상에게 무언가를 선물하는가 아니면 그로부터 무언가를 탈취하는가. 어떤 잉여 쾌락을 누리기 위해 쓰인 글인가. 고백하자면 나는 위의 다섯 단락을 씀으로써 지금 나를 향하는 저 질문들에 '지면관계상' 답할 수 없게 되는 데 성공했다.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꼬집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누군가를 증오하는 이유는 그 증오가 사라지면 자신의 고통을 상대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 이 글의 문맥에 맞게 저 문장을 함부로 바꾸면 이렇다. "사람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누군가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 비판을 그만두면 자기 자신의 비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

 

 

초등학생일 때의 나도 누군가를 비판함으로써 소속감을 느끼고 어깨가 올라가는 자존감을 채우는 그런 본성에 지배되는 족속의 인간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등학생 때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수많은 시기 어린 질투들을 겪어본 후 그러한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추악한지 몸소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앞에서 하든 위에서 하든 똑같이 전부 싫어한다.

이에 관련된 여러 생각들을 더 자세히 짚어보면

 

1. 내가 누군가를 비판할 자격이 되나?

나도 얼마든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아서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내 자신이, 그럼으로써 소속감을 느끼려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간사하게 느껴지고, 진심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자존감에 흠집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에서든 당당해지기 위해서, 내 자신을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누군가를 욕하려는 욕구를 포기했다. 흠 근데, 포기라기 보다는 그냥 그런 욕구가 사라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무언가.. 현재의 나에게는 그런 인간들에게 당연하다 여겨지는 본성적 욕구가 없다.. 소속감..? 솔직히 소속감에 대한 욕구도 없다. 삶 전반에 걸친 인간관계는 스쳐감의 연속이니까. 그중 더 오래 마주하고 싶은 사람들은 스쳐 사라지기 직전에 좀 더 붙잡아둘 뿐이다.

 

2. 누군가를 밟아야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회에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난 밑에 깔리기를 택하겠다.

누군가를 밟아야지만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타인에 의해 정의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밑에 깔리는 타인이 존재해야만 내가 위쪽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니까. 나를, 내 인생을 정의할 수 있는 권한을 나는 나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넘기고 싶지 않다. 나는 오로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타인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들로 타인을 비판하지 않게 되니, 내 자신을 비판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문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깊이 공감한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내 자신을 비판할 때 장점보다 단점만을 늘어놓고 고쳐나가는 사람이었다. 작년부터 장점도 보려 노력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장점보다는 단점을 보는 비율이 더 큰 것 같다. 내 인생은 장점 하나 위에 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단점을 없애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단점이 한 가지 생각난다면 의식적으로 칭찬할 만한 장점도 5개 생각해내는 습관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아 근데 지금 장점을 나열하다가 한 가지 또 명심해야 할 것이 생각났다. 누군가를 칭찬할 때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내 자신을 칭찬할 때도 그런 장점을 보고, 부족하다면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좀 더 의미가 깊은 과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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