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군가와 새롭게 친해지다가도 거리를 두고
새롭게 친해지다가도 관계를 조용히 끊어내고
말없이 뒤돌아서고
이런 경험이 최근까지 계속 반복되니까 (이정도면 진심으로 100번은 넘긴 것 같은데)
이런 나의 관계 방식으로
내 일상의 평안함과 만족스러움은 지킬 수 있었지만
아직 난 26년밖에 살아보지 못했으니.. 내 방식이 옳은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 컸다
내 스스로가 포용력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고 느껴졌고
인간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은 것 같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며칠 내내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고민을 해봤는데
애초에 관계방식에 대한 정답은 없고
어떤 관계 방식을 선택할 것이냐에 대한 선택권만 있을 뿐인데
나는 현재 내 방식을 계속 유지하는 게 내 인생에 가장 좋은 방식인 것 같다
누군가를 내 인생에 들이느냐 마느냐를 스스로 결정하는 건 포용력이 부족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를 인간 자체로 이해하고 연민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인생, 성격, 선택, 나에게 주는 영향을 내 인생에 포함시키고 싶지 않다면, 굳이 내 인생에 둘 필요는 없는 인연이다. 감사할 거에는 감사하고 미안해할 거에는 미안해하며 잘 보내주면 된다.
결국 인생은
20대까지는 직접 선택할 수 없는 가족,
30대부터는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가족,
그리고 평생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친구
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같다고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인데
내가 좋아하는 인생인데
왜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을
“포용력”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선택해야하는가?
누군가를 친구로 선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내가 포용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상대가 나에게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포용하고서라도 상대를 내 곁에 둬야하는 긍정적인 영향이 없었던 것이었다
정말 내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전부 포용이 되더라. 이에 대한 가장 최근 예시가 몬쥬이다.
2.
항상 한 사람을 파악할 때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생각없이 하던 습관에 확신이 생겨 나만의 기준이 되었다
결국 그 사람의 가장 곁에 있는 친구들은
그 사람이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는 누군가를 파악할 때 그 사람의 집안을 보는 것 같던데
이해는 되지만,
20대까지 가족은 직접 선택할 수 없고
친구만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인간관계라는 걸 생각해봤을 때
인간은 부모의 길을 따라가든지
아니면 부모와 정반대의 길을 걸으려 노력하든지
이 두 가지 중 하나로 살아간다 생각한다
결국 집안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떠한 집안에서 태어났든 그로부터 무엇을 배웠으며 현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3.
현재 내가 선택한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분명 그들도 나처럼 단점이 있지만
이를 넘어 그들을 한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이유가 바로바로 떠오르더라
예전에 한 전남친을 끊어냈던 이유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를 도저히 말할 수 없어서였는데, 이미 그런 상태가 된 이상 그 관계는 끝난 것이었다
모든 건강한 관계에는 서로에 대한 존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점이 없는 완벽한 사람 둘이 만나 하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단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인간 동료로서 존경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존경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 크면.. 또 친구로 선택할 이유가 사라지긴 하지..
4.
어린 왕자에서는
모두가 다 똑같은 가시가 있는 장미이지만
한 장미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내가 그 장미에게 낭비한 시간이다
라고 했지만
사람들도 다 같은 장미이긴 하다만
사람마다 가시나 꽃잎의 모양과 개수가 다 조금씩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결국 완전히 같은 모양의 장미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런 다 다른 모양의 장미들 중
내가 좀 더 좋아하는 모양의 장미들이 있을테고
그 내가 좋아하는 장미들에게 내가 들인 시간이 그들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결국에는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든다
결국 사랑할 사람을 직접 선택하고 그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도
나 좋으라고 하는 일이다
5.
하여튼 결론은
난 앞으로도 포용력을 기를 생각은 없다
30대부터 내가 직접 선택하게 될 가족인 남편이 포용력이 많은 사람이어야 우리가 만들 가정이 더 화목해질 거라고 확신한다 포용력은 내 역할이 아니다
난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내 일상 내 친구 내 가족 내 인생을 지키면서
나만의 기준과 확신들을 이리저리 검증하고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과 같이 기준을 고민해나가고 그렇게 확신을 쌓아나가며
내 인생을 키워나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