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
나는 시라쿠사의 퇴색한 석회암계단에 앉아 저멀리 희붐하게 빛나는 지중해의 수평선을 보며 열아홉 살의 봄에 경험했던 찬란한 행복을 회상했다.
모두 같은 색의 티셔츠를 입고 손을 높이 쳐든 채 <젊었다>를 부르던 그날을.
그럴 때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갈 데 모를 방랑이 아니라 어두운 병 속에 가라앉아 있는 과거의 빛나는 편린들과 마주하는, 고고학적 탐사, 내면으로의 항해가 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타오르미나의 그리스식 극장에 앉아 나는 그때의 노래를 소심하게 웅얼거린다.
간단한 가사를 계속하여 반복하던, 그래서 신입생들로 쉽게 따라 배울 수 있었던 그 응원가는 이렇게 끝난다.
그대여, 그대여어어, 너와 나는 태양처럼 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