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아고타 크리스토프
나의 경우, 글쓰기는 하나의 습관이다.
나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로 항상 무엇인가를 쓰시곤 했다.
우리 집에서는 책이 항상 대단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었다.
작가가 된 나의 동생은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는데, 그는 많은 소설들을 썼다.
나는 망명 후의 여공 시절에도 공장에서 일하면 머리로는 시를 짓곤 했다.
기계의 리듬에 맞춰서, 작품을 끝냈을 때의 기분은 허탈했다.
완성된 작품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쓰는 행위를 정신분석과 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을 때 거기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것은 하나의 속임수이다.
쓰면 쓸수록 병은 더 깊어진다.
쓴다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나는 쓰는 것 이외에는 흥미가 없다.
나는 작품이 출판되지 못하더라도 계속 쓸 것이다.
쓰지 않으면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
쓰지 않으면 따분하다.
이창준의 유서 - 비밀의 숲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현실은 대다수의 보통사람은 그래도 안전할 거란 심리적 마지노선마저 붕괴된 후다.
사회 해체의 단계다.
19년, 검사로서 19년을 이 붕괴의 구멍이 바로 내 앞에서 무섭게 커져가는 걸 지켜만 봤다.
우리 사회가 적당히 오염됐다면, 난 외면했을 것이다.
모른 척할 정도로만 썩었다면, 내 가진 걸 누리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 몸에서 삐걱 소리가 난다.
더 이상 오래 묵은 책처럼 먼지만 먹고 있을 순 없다.
이 가방 안에 든 건 전부 내가 갖고 도망치다 빼앗긴 것이 돼야 한다.
장인의 등에 칼을 꽂은 배신자의 유품이 아니라 끝까지 재벌 회장 그늘 아래 호의호식한 충직한 개에서 빼앗은 거여야 한다.
그래야 강력한 물증으로서 효력과 신빙성이 부여된다.
부정부패가 해악의 단계를 넘어 사람을 죽이고 있다.
기본이 수십, 수백의 목숨이다.
처음부터 칼을 뺐어야 했다.
첫 시작부터.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조차 칼을 들지 않으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다.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시간도 아니요, 돈도 아니다.
파괴된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사람의 피다.
수많은 사람의 피.
역사가 증명해 준다고 하고 싶지만 피의 제물은 현재진행형이다.
바꿔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찾아 판을 뒤엎어야 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이미 치유 시기를 놓쳤다.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누군가 날 대신해 오물을 치워줄 것이라 기다려선 안 된다.
기다리고 침묵하면 온 사방이 곧 발 하나 디딜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이제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치워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나의 이것이 시작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