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천지 상
태극은 천지가 있기 전에 있었던 뒤섞인 물건이 아니요 천지만물의 리의 총칭 아닙니까?
태극은 천지만물의 리일 뿐이다. 천지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천지 가운데 태극이 있다. 만물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만물 각각에게 태극이 있다. 천지가 있기 전에도 필경 먼저 이 리가 있었을 것이다. 움직여 양을 낳는 것도 리이고 고요하게 멈춰서 음을 낳는 것도 리이다.
태극해에서는 왜 움직임이 고요함에 선행하고 작용이 본체에 선행하고 감지함이 적막함에 선행합니까?
음양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작용은 양에, 본체는 음에 속한다. 하지만 움직임과 고요함에는 중단점이 없고 음과 양에는 시작점이 없으니 선행하고 후행하고를 나눌 수 없다. 여기서는 기점을 기준으로 말한 것뿐이다. 움직임 전에는 또 필경 고요함일 것이고 작용 전에는 또 필경 본체일 것이고 감지함 전에는 또 필경 적막함일 것이고 양 전에는 또 필경 음일 것이고 적막함 전에는 또 필경 감지함일 것이고 고요함 전에는 또 필경 움직임일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선행한다 후행한다 정할 것인가? 오늘 움직인 것을 시작이라고만 말하고 어제 고요했던 것에 대해서 침묵하면 안 된다. 예컨대 숨쉬기에 대해서 '호흡'이라고 표현하고 '흡호'라고 하지 않는 것은 그 편이 말이 순조로워서 그런 것일 뿐이다. '호' 전에는 또 필경 '흡'일 것이요 '흡' 전에는 또 필경 '호'일 것이다.
순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어제 '천지가 있기 전에도 필경 먼저 리가 있었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천지가 있기 전에는 필경 리만 있을 것이다. 리가 있고서 이 천지가 있다. 이 리가 없으면 천지도 없고 사람도 없고 사물도 없고 실어줄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리가 있으면 기가 있어 두루 흘러 만물을 틔우고 키워준다.
틔우고 키워준다는 것은 리가 틔워주고 리가 키워준다는 것입니까?
리가 있으면 기가 있어 두루 흘러 틔워주고 키워준다. 리는 형체가 없다.
이른바 본체라는 것은 억지로 이름 붙인 것입니까?
그렇다.
리는 극이 없고 기는 극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극을 논하자면 어느 지점을 가지고 극이라고 할까?
태극이 없었다면 천지는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태극은 리 한 글자일 뿐이다.
리가 있고서 기가 생긴다는 것은 '음했다 양했다 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는 말에서 추론한 것이다. 이 성에는 그 자체로 인과 의가 있다.
천하에 리 없는 기도 없고 기 없는 리도 없다. 기를 가지고 형태가 만들어지고 리도 거기에 부여된다.
먼저 천리가 있고서 기가 있다. 기가 쌓여 질이 되고 본성이 거기 갖추어져 있다.
리와 기에 관하여 물었다.
이천이 잘 말하였다. '리는 하나이나 개별 케이스로 나누어진다.' 천지만물을 합하여 말하자면 하나의 리가 있을 뿐이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각자가 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리와 기에 관하여 물었다.
리가 있고서 기가 있다. 다만 리가 근본이므로 지금은 일단 리로부터 기를 설명하는 것이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움직임이 극에 이르러 고요해지고, 고요함이 음을 낳는다.' 같은 경우, 움직임 이전에 고요함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정자는 '움직임과 고요함에 중단점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것 역시 아마 저 움직임 부분에서부터 말을 시작해서 그런 것이다. 따지고 보면 움직임 이전에는 또 고요함이 있고 고요함 이전에는 또 움직임이 있다. '음했다 양했다 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 그것을 이어서 계속하는 것이 선이다' 같은 경우, 이 '이어서 계속하다'는 것이 움직임의 단서(시작점)이다. 만약 한 번 열렸다 닫혔다 하고서 그 뒤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냥 닫히고 끝나버린다.
이어서 계속한다는 부분은 움직임과 고요함의 중간지점 아닙니까?
고요함의 끝, 움직임의 시작이다. 사계절로 말하자면 겨울철에 이르러 만물은 모두 보금자리로 돌아가버린다. 만약 다시 생겨나지 않으면 내년에는 (세계의 순환이) 모두 종식되어버릴 것이다. 대개 정에서 원이 다시 태어나니 이처럼 끝이 없다.